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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태움 괴롭힘 문화 & 왕따 회식, 퇴사 금지, 생리 주기 조절

αβγ 2023. 11. 1. 21:05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A씨(27)는 지난 5월부터 119구급대원(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A씨는 응급실 특유의 격무와 무리한 일정, 선배 간호사들의 괴롭힘(태움)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썼다. A씨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것은 물론 퇴근하고서도 선배 일을 떠맡거나 환자 관련 회의를 한다"라며 "이대로라면 신체·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만뒀다"고 했다.

 

지난 16일 의정부 을지대병원 기숙사에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신입 간호사 B씨(24)를 두고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병원 측의 '갑질 계약'도 문제지만 간호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인 '태움' 역시 버티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간호사들은 그간 '태움'이 여러차례 문제로 지적돼 왔음에도 변화가 없어 비슷한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 "생리 주기 조절에 '왕따 회식'까지"…신입 간호사 절반이 그만두는 이유

 

B씨의 유족과 남자친구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숨진 B씨는 병원 내부에서 선배 간호사들의 태움에 시달려 왔다. B씨가 "퇴근하겠다"고 하면 선배들은 "너 같은 애는 필요 없으니 꺼져라"고 공개적으로 혼을 내거나 볼펜을 얼굴에 던지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 B씨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이 무산되자 퇴사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으나 상사는 "퇴사는 60일 뒤에야 가능하다"며 퇴사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으로 드러났다.

 

저연차 간호사들은 이같은 일이 드물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고연차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후배들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가혹행위를 강요하거나 나이트(야간근무) 순번을 뒤바꾸고 식사·화장실을 금지하는 등 태움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일수록 이같은 행위가 빈번해 보수가 낮더라도 개인병원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이같은 경향은 신입 간호사들의 높은 사직률로 나타난다. OECD 헬스데이터·병원간호사회 등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1년 미만 간호사 사직률은 2019년 기준 45.5%로 타 산업 평균 이직률(4.8%)보다 9배 가량 높다.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43만 6565명 중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도 22만 5462명으로 절반에 그쳤다.

 

신입 간호사들은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지만 그만큼 격무와 태움이 심해 '번아웃'(burn out·소진)'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아동 전담 간호사로 근무하는 C씨(26)는 "생리 주기를 팀원들끼리 조절하라거나 5일에 1번씩 '점심 굶는 날'을 정해 식사도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며 "첫 월급으로 300만원 넘게 받아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라고 했다.

 

남성 간호사는 힘든 부서로 전출시키는 탓에 소방공무원 등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사람이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초 병원을 나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하모씨(31)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처럼 체력이 필요한 부서로 남성 간호사를 보내기 위해 '편한 곳'에 있는 신입 간호사들을 괴롭힌다"며 "부서 회식에 나만 빼놓고 연락을 돌리거나 둘이 서는 당직을 혼자 서게 하는 식"이라고 했다.

 

2. "3년 전에도 지적됐던 문제, 아직까지 반복"…을지대병원은 '조직문화 개선하겠다'

 

시민단체에서는 의료계 전반적인 문제 인식과 악습 개선 의지가 없으면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보건의료노조는 의정부 을지대병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는 인력부족, 태움과 갑질문화, 그릇된 조직문화 등이 결합된 총제적 결과로 병원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라며 "3년 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숨진 뒤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의정부 을지대병원은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해 악습을 끊겠다고 했다. 을지대병원은 지난 29일 공식입장을 통해 "간호사 사망 사고의 진실 규명을 위한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라며 서면 인수인계를 활성화하고 병동 순회 당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근로계약서 내용 중 비판받은 '1년 동안 퇴사할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없다'는 특약 조항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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